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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여정 다시, 아침 커피&빵 그리고 사과 한개 그렇게 아침을 열었다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 집중치료실로
병실을 옮기셨다
여러 자식들을 낳았고
행복하고 편안한 날도 있으셨을테고
힘들고 고통스런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화가 나고 부끄럽다
원망과 수치스러움이 공존한다

막내 외삼촌은
내 기억에 늘 조용했던 분으로 생각된다
작은 외숙모(막내 외삼촌의 형수)가 직장암으로 투병
중이었을때  그 즈음 도박으로  외갓댁 문중의 산을
탕진하고 이후 식구들을 볼 면목이 없어
집을 나가신 후로 수년간 소식이 없다

큰 외삼촌도 집안의 재산을 많이 처분해 사업을
했지만 잘 되지 않으셨고 작은 외숙모의 입원  치료중에
병원비가 감당하기 어려웠을때
큰 외삼촌댁에 500만원만 보태달라고 했고
그때 사정이 어려워 못 보태준 것이겠지만
커다란 언쟁 이후 가족들과 여러 해 동안
왕래하지 않고 지내신다


돈이란 그렇게 끈끈했던 가족도 의절하게 하고
데면 데면 했던 사이도 다시 붙여 놓을 수 있는
특이한 물질 같다

부자였던 외갓댁
2000년 이후 많은 재산들이 여러 이후로
없어지고 더 많이 가져간 장남과
덜 가져간 형제들
도박으로 얼마남지 않은 재산 마저 탕진해 버린
막내 외삼촌
서로를 미워하게 된것 같다

이십대 때 직장생활이 늘 버거웠다
사회는 이십대인 나에게 외모적으로
더 예뻐야 한다고 더 더 더를 부추기는  것 같았고
예쁘게 꾸민날은 직장에서도 더 관심을 받고
능력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꾸미지 않은 여러 날에는 꾸미고 다니는
또래들의 들러리 같은 존재 같았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버거워
집에서라도 조용히 쉬고 싶을때
한번 오시면 기본 일주일 길게는 한달씩도
우리집에 머무는 외할머니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집을 나가 혼자 살고 싶었지만
월급 120만원을 벌어 생활비를 좀 쓰고 나면
남는게 너무 없었을 때라 혼자 자취를
준비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 때 였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그때 부터
마치 집이 없는 사람처럼 떠돌아 다니신  것 같다
우리집에서 한 두달
천안 외삼촌 댁에서 몇달
점점 연로해 지시고
점점 방두칸짜리 집에서 아들 둘을 키우며
팔순이 넘고
남은 돈이 하나도 없는
팔순의 노모 부양을  셋째 외삼촌댁에서만 맡아야
한다는 것이 그 분들에게 울화를 일으켰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외할머니의 노후를 보면서
엄마의 육십 이후의 삶을 보면서
더 많이 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가난은 조금 숨길 수도 있고
젊다는 그 아름다움의 빛으로 버틸 수도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그러나
근로 소득이 끊길 나이에 돈이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식들에게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담이
이어지게 된다

나는 우리 엄마를 보면서
그런 점을 많이 느끼게 되었고
소득과 지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곤 한다
씨드가 단단해 지기 전에 이리 저리 써버리게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밤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인강 딱 하나만 듣고 자자

신이 허락한 이 귀한 하루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성장하고 또 성장하겠습니다
함께하고 또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행복하고 건강한 아름다운 부자입니다

그레이스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