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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식처 우리집 🧡

이제 몇달 후면 이 집을 떠나겠지
만 10년을 이곳에서 살며
대학 졸업하고
직장다니고
연애하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유치원 보내며 잘 살았다
중간에 남편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어
온 가족이 걱정했었고
이 집에서 노후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외할머니도 당신 고향인 아산이 아닌
이 도시의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비가 온다
느닷없이 주어진 연휴 이후의 휴가로
요 며칠 아주 여유만만디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까이 사는 친정 엄마가 추석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늘었다고 딸아이 유치원을 일주일 정도
쉬게 하자고 당신이 봐주겠다고 장담해서
덕분에 나는 잘 쉬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일어나
전날 빨아 널어 놓았던 빨래들을 우선 건조기에
넣고 씻고 커피를 끓이고 나와 아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거나 출근 준비를
한참 하고 있을 시간이다

한번씩 딸을 위해 주택에 살아보면 어떨가
싶다가도 보안이나 사생활 보호 등에 관해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결론은 다시 아파트로
돌아오게 된다

집 주변에 내가 가진 돈으로 입주할 수 있는
패시브 공법으로 지어졌다는 주택단지가 있는데
토지와 건축비용 때문인지 듀플렉스 형태로 시공되어
마치 한집을 두가구가 나눠 쓰는 느낌이 들고
옆집이 딱 붙어 있어 벽간 소음이 신경 쓰일것 같고
무엇보다 내부에 계단이 있는 2.5층 주택이라
모든 물건들을 일이층에 다 나눠 놓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번씩 주방이 있는 일층에서
거실이 있는 이층으로 오르내릴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동선이 복잡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렇게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구조도
아이는 꽤나 즐거워할 것 같다

비가 많이 내린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바로 뒤가 숲이라
평소에도 공기가 맑고 시원하다
오늘처럼 비가 제법 내리는 날에
초 한자루 켜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새벽녘 멍하게 빗소리 듣고 있을 때
그 고요와 비어 있음이 참 좋다

새로 이사갈 집은
지금 집에서 가깝다
더 비싼 집이지만 거실 창 쪽엔 앞동 아파트가 보이고
부엌쪽 창으로는 중심상가 건물이 이미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지금과 같은 숲 뷰는 한동안 볼 수 없을것이다

육십대 중반에 들어선 엄마는 무릎이 아파
고생하셔서 그런지 같은 값이면 중심상가 근처가
좋다고 하지만 나는 숲이나 하늘이 보이는
자연을 느낄 수 뷰를 더 선호한다

수도권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 내내 자라
학교, 직장, 결혼, 출산과 육아를 거쳐
마흔이 넘도록 이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나와 남편, 내 동생들
이곳에서 내 집 한칸을 마련해 보고자
많은 이들이 영혼을 갈아넣고 있을 것이다

이 집에 이사온 첫날
지금 보니 그리 넓지도 않은 베란다에 둘러 앉아
외삼촌, 외사촌 그리고 우리 가족 짜장면을
맛있게도 나눠 먹었다
떠나려니 시원 섭섭하다

어제는 하루 온종일 집에 집으며
드라마 보고 안방 청소하고 빨래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 홀로 있는 동안
창 문 밖에선 제초기 웽웽 돌아가는 소음과
세탁기와 건조기가 작동하는 웅웅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긴 했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사생활을 보호 받으며 집에 머무를 수 있는
그 시간이 잠시지만 편안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조금 느릿 느릿 살아도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는 삶

조금 천천히 살아도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고 알아가고
자신과 늘 대화하는 삶

때론 열정적이고 성실하지만
가끔 멈추어도 불안해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수 없이 많은 날
많은 날들
좋든 싫든 따질 새 없이 전진하고 또 전진하며
걸어왔다

그러는 사이
내 정성과 노력을 몰라주는 남편과
가족들에게 분노하기도 했고
만성피로를 달고 살아 온 것 같다

늘 피곤해 하는
남편에게도 안식년을 주고 싶다
쉬고 난 뒤에는 내가 일어서서
주님께 기도하고
감사와 겸손
사랑의 마음을 갖고
지혜롭게 풍요를 일궈 나누며 살아가리라 !

주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