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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 온다. 며느리들아 기죽지 말자!

공기가 차갑게 바뀌고 가을이 어느 순간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맘 카페에 며느리로서의 고충을 글로나마 해소하고자 적어 올리면 적지 않은 주부들이 공감 댓글을 달아 놓는다.

무엇이 이 땅의 며느리들을 시댁 혹은 명절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일까?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것은 며느리들 사이에 공공연한 뼈 있는 농담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이유를 말하자면 참 많고 다양하지만 요약해서 표현하자면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가부장 문화의

폐해 때문으로 인식된다.

친정에도 각종 행사가 많다.

이사해서, 휴가 다녀와서, 한번 볼 때가 되어서, 조카가 태어나서, 어버이 날이라서 , 부모님 생신이라서

계절이 바뀌어서, 반찬을 가져가야 해서 등등

가족이 만나야 할 이유는 끝도 없이 많다.

사위들에게는 참석여부에 대한 선택이 주어지고 참석한다고 해도 딱히 하는 일 없이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건네고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하며 그냥 쉰다.

 

며느리 들은 어떤가?

 

2020년임에도 한 숨이 나오는 것은 왜 일까?

어느 날 시댁에 갔더니 어머님께서 시이모님 댁 큰 며느리가 정말 꼼짝도 안 하고 앉아만 있는다고 애가

너무 이상하다고 말씀하셨다.

새댁이었던 나는 그와 같은 지적을 받도 싶지 않아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새가 없이 부지런히 딸을 돌보거나 시댁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니 어느 날 어머님의 여동생께서 나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

"지나치게 부지런할 필요 없다"

 

하!

어차피 시댁이란 곳은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곳이구나

마치 지적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어떤 시스템 안으로 들어간 것 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지난 추석 때 부부싸움을 하다 누나들이 친정에 도착하고 한 시간 만에 우리가 일어나 시댁을 나와서

눈치가 보이고 한 소리 들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났던 나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야! 니 누나들이 친정 와서 늦은 점심을 먹을 때까지 나는 친정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내가 왜 눈치를 보고 한소리를 들어야 하냐?"

 

화가 났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다가 종래에는 이런 생각도 한다.

 

이혼? 졸혼?

뭐 먹고살지? 애는 어쩌지?

친정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시댁이 불편한 것뿐이지 남편이 싫은 건 아닌데........

점점 용기가 작아지면서

나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 나는 이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 외치고 또 외쳐본다.

결혼 10년 차 넘어가면 더 짬밥이 늘어 뭔가 방법이 생기지는 않을까 등등 궁여지책 살길을 모색해 본다.

 

결정적으로 내 마음이 약해지는 건

하루 종일 빡빡한 회사일을 하면서도 나와 딸을 위해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남편의 삶을 잘 알고 있기에

나에게도 인내와 시댁 식구들에 대한 작은 사랑과 연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부부가 되어 일상을 함께 공유해 가며

여전히 그와 나는 생각도 관점도 다를 때가 많지만 서로가 한 골대를 향해 달리는 팀이 되어있음을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달리면서도 어느 지점에서 공이 패스가 되어 날아올지 예측하고 움직이다

결국 골인시키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삶이 되어 가고 있다.

 

새벽이 깊어간다.

가을이라 좋고 비가 와서

비만 오면 센치해지는 나는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곤 한다.

 

아직 더 많이 익히고 배우고 성장해 가야 하는 삶이지만 작게나마 깨우친 것이 있다면

삶은

때론 우회적으로, 때론 그냥 욕먹을 각오로, 때론 정면돌파로

때론 모르는 척 함으로써, 때론 할 말을 해버림으로써, 때론 참고 인내함으로써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쉬고 싶으면 쉬고 싶다

정직하게 자기 욕구를 알고 인정하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돌볼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차분하고 겸손하게

지혜와 사랑을 담아

한발 한발 디뎌가는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소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나치게 경계하기보다 물 흐르듯 지켜보며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하고

응원할 것은 깔끔하게 응원하고

내 용량을 넘칠 정도의 미션이라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나갈 생각이다.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을비가 내리는 멋진 토요일 신께 감사드립니다.!